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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거읍 소개

성거읍 소개

성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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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천안시 성거읍, 입장면, 북면 사이/해발 579m
 

성거읍에 위치한 성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할 때 직산면 산헐원을 지나다 동쪽의 산을 보고 신령이 있다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고 산 이름도 "성거산"이라 명명 하였다.
그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태조, 세조, 현종등이 온양 온천에 행차 할 때면 이 성거산에 관원을 파견하여 치제하게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이지방 곳곳에서도 지금도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또한 입장면 호당리 위례산 서쪽 기슭에는 산신을 모셔 놓은 당집이 있는데 이곳 주민 들은 옛날부터 가뭄이 심하면 이곳 또는 위례 산저에 있는 용샘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산행 안내 성거산으로 가는길

① 천안시내∼성거읍 송남리∼천흥리

  (거리 13km, 승용차로 20분소요),
② 천안시내∼성거읍∼입장면효계리∼시장리∼호당리

  (거리 19km, 승용차로 20분, 시내버스로 30분 소요),
③ 천안시내∼북면 납안리

  (거리 23km, 승용차로 30분, 시내버스로 50분 소요)

의 3곳이 있으며

 

산행코스로
① 코스 : 성거읍 천흥리(천흥저수지)→만일사→만일고개(3.3km) ㆍ소요시간 : 50분
② 코스 : 입장면 호당리→우물목고개→성거산(4.4km) ㆍ소요시간 : 1시간 20분
③ 코스 : 북면 납안리→우물목 고개→성거산(4.5km) ㆍ소요시간 : 1시간 20분

 
성거산 만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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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산 50

 

문화재 설명
만일사는 성거읍 천흥리 성거산 서편의 산중턱에 있으며, 전해져 오는 얘기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도선국사는 신라 말기의 승려로 만일사가 창건되었다는 고려 목종 5년과는 거리가 멀다.

천흥사와 함께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550m나 되는 성거산의 거의 정상부에 제비집 같이 세워져 있고 법당은 1970년에 새로 개축하였다.
경내에는 오층석탑, 마애불, 석불좌상, 금동불 등이 보존되어 있다.

 
만일사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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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254호]

 

[소재지]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산50-2

 

[수 량]
1기

 

[규 모]
높이 2.27m

 

[개 요]
본래 마당에 있던 것을 70년 법당 해체복원시 지금 위치에 옮김 기단부는 하대중석, 상대중석, 상대갑석으로 되었으며, 하대중석에는 우주와 안상이 희미하게 되었고, 상대갑석에는 앙연문이 조각되어 있다.
5층의 몸돌 4면마다 여래좌상이 부조되어 있는데 1층 몸돌은 옮길 때 잘못된 듯 거꾸로 되었다.
지붕돌은 받침이 2단이고 반전이 있다.
전체높이는 227cm로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천흥사동제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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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257호]

 

[소재지]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산50-2

 

[수 량]
1기

 

[규 모]
높이 1.61m

 

[개 요]
금동불의 높이는 127cm이고 연화대좌의 높이는 34cm이다.
어깨넓이는 33cm이고 팔의 깊이는 41cm이다.
오른손에 감로수 병을 들고 있는데 감로수병의 크기틑 16cm이다.
왼손에는 사람의 마음을 맑게하는 청심환을 들고 있고 관의 높이는 13cm로 화려하며 관머리에 아미타상이 있다.
불상의 배변 아랫쪽에 통화 20년 천흥사라는 각자로 보아 본관음상의 제작연대는 1002년(고려목종5)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중국 요의 침입에 시달렸던 고려가 외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불사를 일으켜 천흥사를 창건하고 이절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땅에 묻혔던 것을 일제때 사 금을 채취하던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발굴되어 왜인들이 매입 보관하였다가 2차대전 말기에 철물공출할 때 공출되었던 것을 주지 임흥군화상이 거두어 지금의 만일사에 봉안되었다.

 
◆ 만일사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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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제250호]

 

[소재지]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산50-2

 

[수 량]
1동

 

[규 모]
13평

 

[개 요]
이 사찰은 법당에 안장된 동제관음보살상의 배면에 통화 20년이라는 글로 보아 고려 목종5년(1002)경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법당은 1970년에 개축한 것으로 정면4칸, 측면2칸이며 지붕은 팔작이고 전통 건축보다는 형식화된 구조이다.
해체복원시 본래의 주춧돌 등 부재를 묻어버려 아쉬움이 있다.
82.8.13일 법당앞 마당에서 삼국시대 것으로 보이는 금동보살입상이 발견되어 80만원의 보상금을 받고 귀속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보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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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거산 보명사대웅전 전면도

 

보명사 서울포교당 개원 (현대불교신문)

 

1998년11월8일 서울포교당 개원(서울시 서초구 방배3동 1023-2)

 
천흥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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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234

 

사역의 대부분이 천흥 저수지의 축조로 말미암아 상당 부분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최근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불당이 있으며 원래의 사지는 불당의 전면에 있는 과수원 지역으로 추정된다.
구체적 연혁의 확인은 어려우나 천흥사는 고려 태조 4년(921)에 성거산 밑에 세운 절로 태조가 그 산 위에 오색 구름이 걸쳐 있는 것을 바라보고서 성거산이라고 이름을 짓고 그 아래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사찰의 경내에서 보물 제354호로 지정된 오층석탑 1기와 보물 제99호로 지정된 당간지주 1기가 남아있어 규모가 제법 큰 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聖居山天興寺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이라고 새겨진 종이 있는데 이 천흥사에서 쓰던 종으로 1010년에 만든 것으로 이 명문을 통해보면 고려 현종대에 이미 사찰이 조영되어 있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현재 사역 내에 각종의 사찰 흔적이 남아있는데 부재 조각들 외에 기와 조각, 토기 조각, 자기 조각 등이 수습되고 있다.

 
◆ 천흥사지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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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5.27m나 되어 당당하지만 지붕면이 좁아지고 왜소해지는 등 고려시대 탑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오층석탑이다.
기본적 구도는 신라식의 탑 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지대석은 지면과 같은 범위로 조성하고 그 위에 2층의 기단을 조성하였다.
하층기단은 4매의 널찍한 판석으로 구성하였고 그 위에 1매석으로 이루어진 하대석과 중대석은 모두를 1매석으로 조영한 형식이며 상대 갑석은 2매를 사용하고 있다.
하층 기단면에는 당간지주와 같이 각면에 작은 안상이 7구씩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옥신석이나 옥개석 모두 각각 1매석으로 만들었는데 옥개의 경우 추녀의 밑이 수평을 이루지만 우각의 부분에서는 심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낙수면에서도 현저한 반전을 보인다. 한편 옥신석은 상층으로 갈수록 체감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형태이다.
탑의 전체적 형상은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상륜은 완전히 결실되어 있고 옥개의 낙수면 반전 전각의 곡선율이 크다는 점, 하층 기단을 약식으로 한 점 등이 하나의 특징이다.
동종이나 당간지주와 같은 시기인 1010년 무렵에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천흥사지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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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당간은 없어지고 지주만 남아있는데 일부가 파손된 상태로 정비되어 있다.
지주는 양 지주 사이가 60cm 간격을 두고 동서로 세워져 있다.
본래 일정한 높이의 기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 부분에 일부의 교란이 보이는 바 현재는 2층의 형태로 안상이 새겨진 기단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이다.
양 지주는 기단 아래 약 70cm가지 묻힌 것으로 추측되며 다듬었지만 그 흔적이 분명하지 않은데 상면은 아무런 장식이 발견되지 않는다.

양 우주는 내측면은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상단에 간을 세웠던 장방형의 간주가 있고 외면은 모서리부분에 하나의 양각선을 조출하고 있다.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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